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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새전북신문 2024-07-02] 강암 송성용의 ‘천자문’, 하석 박원규의 ‘공정’과 효봉 여태명의 ‘가시내’
작성자
강암서예관
작성일
2024-07-02 20:00
조회
72

개인 소장 강암 송성용(1913~1999)의 ‘천자문(1990)’은 선비의 기상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해서
체로 또박또박 썼다. 작가의 혼과 감흥이 살아 움직이는 작품이다. 하늘 天에서 어조사 也에 이르
는 천개의 글자가 한 호흡, 한 먹으로 휘필된 것이다.
강암이 78세 때 쓴 해서(楷書) '천자문(千字文)'으로, 한 번의 호흡으로 8시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그는 평생 구양순의 엄정한 해서를 비롯해 북위서의 험절(險絶)한 조형과 남조(南朝)의 부드러운 필세, 안진경과 유공권의 굳건한 근골(筋骨) 등을 두루 학습했다. 해서를 해서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예서와 해서와 행서를 혼용, 평정하면서도 졸박하고, 졸박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을 점획과 자형에 응축시켰다. 즉, 가로획은 수평을 유지하되 때로는 우하향으로 처진 듯한 느낌마저 주며, 가로획과 파임 부분은 해서의 기본을 유지하되 방필의 험경(險勁)한 기운을 덜어냈다. 그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필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여 편안한 가운데 역동감이 내재된 외유내강의 해서체를 완성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된 것
이 바로 '천자문'이다. 이 작품은 제가(諸家)들의 해서 필법을 모두 취한 다음 자기만의 독창적인 서체로 완성한 송성용 해서의 결정체이다. 일련의 법식에 얽매이거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일체의 속기를 덜어낸 뒤 '심수합일(心手合一)'의 경지에서 오직 자신의 필체로 일필휘지했다.
"처음에는 체본 겸 쓸려고 또박또박 가다가 중간부터는 칸 밖으로 획이 뛰어넘어 가고 크기도 달라지더니 뒷부분은 신들린 듯 휘갈겼다"는 것이 강암의 말이다. 담배한대 못 피고 꼬박 한자리에 않아 썼다고 한다.
한국 현대서예의 한 획을 그은 그는 선고에게 한문과 글씨를 배웠다. 원래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부족증에 걸려 투병하느라 서예로 길을 바꾼 것이 15세 무렵. 이후 60여 년간 행.초서와 사군자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전광석화, 후려패듯 쳐내는 목죽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석 박원규의 ‘공정’은 서주시대 청동 제기(祭器)에 새겨진 ‘정(正)’자를 재해석한 김제출신 하석 박원규(1947-)의 작품이다.
고대의 ‘정(正)’자는 윗부분 ‘한 일(一)’자에 해당하는 ‘입 구(口)’자 모양과 그 아래의 ‘그칠지(止)’에 해당하는 두 발자국의 모양으로 서사되기도 했다. 하석은 이러한 고대 금문(金文)의 자형을 오늘날의 문자조형으로 재해석하여 서예의 회화적 요소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효봉 여태명의 ‘가시내’는 조선시대 주로 민간에서 소설이나 가사 등을 필사했던 민간서체를 현대적으로 예술화한 작품이다.
‘천天·지地·인人’은 하늘, 땅, 인간의 형상을 한자가 아닌 상징으로 형상화해서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나아가는 변화를 드러냈다.
진안출신 효봉 여태명(1956-)의 자유로운 운필에 의한 다양한 표정의 필획과 글꼴은 전체적으로 무질서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현대인들의 감성과 어우러지는 한글서예의 예술적 확장을 보여준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