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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투데이안 2014-09-15] 강암 송성용 선생 탄신 101주년 기념 특별전
작성자
강암서예관
작성일
2014-09-15 00:00
조회
517
-18일 오후 3시 개막식, 10월 12일까지 전시
-특강, 강암 한·중·일 삼국서예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강암서예의 정신 -김병기(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전라북도가 낳은 큰 서예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 선생의 탄신 101주년을 맞아 특별초대전이 전라북도 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일반적으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숫자 단위를 꽉 채운 100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101에 더 의미를 두었다.
강암 선생의 새로운 탄신을 기대하며 전시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강암 송성용 선생은 전라북도 김제군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나 부친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 선생으로부터 유년시절부터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중국의 여러 법첩과 한국의 갖가지 서예자료는 물론, 화보(畫譜)를 중심으로 그림을 익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5체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통칭하는 사군자와 소나무, 연, 파초 등을 주요 소재로 하는 문인화의 대가가 된 인물이다.
광복 이후, 이처럼 다양한 자체의 서예와 다양한 소재의 문인화를 고루 최고 수준에 올린 서예가는 강암 외에 찾기가 쉽지 않다.

‘하나’에 해당하는 서예의 원리에 통달한 결과 ‘십 백(十 百)’의 장르에 적용해 각 장르 모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서예가가 바로 강암 송성용 선생인 것이다.
특히, 강암은 평생을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한복만을 입으며 배운 대로 실천하는 유가의 삶을 살아온 선비로 유명하다.
평소의 생활을 안분(安分: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는 것)과 소박, 검소, 근면, 성실로 일관했고, ‘근본이 서야 방법이 생긴다.’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을 좌우명으로 삼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 많은 명작을 남겼다.
선생의‘안분(安分)’정신과‘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정신은 작품에 쏟은‘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과 함께 이 시대를 비추는 등불이 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목적은 강암의 작품만을 보자는 데에 두지 않았다. 강암의 삶과 삶속에 배인 정신을 먼저 보고 이어서 작품을 보면서 ‘삶이 아름다워서 작품이 더욱 빛나는’ 강암의 예술세계를 조명함으로써 강암의 정신과 작품을 새로운 한류에 실어 세계화로 향하는 길을 열자는 데에 전시의 목적이 있다.
그래서 전시의 주제를 ‘강암은 정신이다’로 잡았다.
각 전시실별 전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1전시실(아카이브) 소주제: 삶이 아름다워 예술이 더욱 빛나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가장 서예적인 환경을 일궈 그 안에서 철저하게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도 새로운 창작의 꽃을 피운 서예가, 위대한 서예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할 인문학적 소양을 누구보다도 풍부하게 함양한 서예가, '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는 말의 의미를 체득하고 최고의 인품은 곧 최고의 심미관이므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품을 갖출 때에 비로소 최고 경지의 예술이 창작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 평생을 군자로 살기위해 노력한 서예가, 수분(守分)으로 초지일관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근면하며 검소한 생활을 몸으로 실천한 서예가, 전(篆), 예(隸), 해(楷), 행(行), 초(草) 5체를 두루 잘 쓰고 매(梅), 란(蘭), 국(菊), 죽(竹)은 물론 송(松), 연(蓮), 파초(芭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서예와 문인화를 구사한 진정으로 실력이 있는 서예가........
이러한 많은 찬사들이 어느 하나도 거북하게 들리지 않은 서예가가 바로 강암 송성용 선생이다.
추사 이후, 우리나라 서단에서 강암 만큼 5체에 능하고 다양한 장르의 문인화까지 그처럼 격이 높게 그려낸 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오창석(吳昌碩)과 제백석(齊白石) 이후 중국 서단에서도 강암 만큼 각 체의 글씨와 여러 소재의 문인화에 능하고 또 높은 격의 작품을 창작한 작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는 지금 동양의 신비한 예술인 서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중국보다 앞서서 그리고 일본보다도 부지런히 우리의 서예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서예를 대표할 만한 큰 서예가가 필요하다. 21세기는 고흐나 피카소 혹은 그 외의 서구권 예술가만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을 받는 시대가 아니다.
동양 특히 한자문화권 예술의 정수인 서예를 창작하는 서예가가 고흐나 피카소 이상으로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강암은 고흐나 피카소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강암을 한국의 강암으로만 남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강암과 강암의 서예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물질만능주의, 오감만족의 향수(享受)주의, 내적 수렴보다는 외적 발산을 부추기는 외향주의 시대가 야기하고 있는 병폐를 치료하기 위해서 우리는 평생을 물질보다는 정신을 중시하고 오감만족의 향수보다는 절제와 수분으로 일관했으며 꾀나 방법이 아닌 근본을 추구한 강암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세계가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의도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러한 강암정신의 우러나옴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된 서예이기에 더 값진 강암의 서예는 새로운 시대에 한류 3.0이 되기에도 충분한 한국성과 현대성을 갖추고 있다.
강암의 서예가 세계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이번의 전시 '101년의 새로운 탄생, 강암은 정신이다'를 통해 강암 선생의 서예가 선생의 아름다운 삶과 그 삶 안에 담긴 위대한 정신과 함께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기운을 얻기를 기대한다.
■ 제2전시실의 제1부 소주제: 서사(書寫)와 서예(書藝) 사이
‘서예(書藝)’의 ‘서(書)’는 ‘쓴다’는 뜻이다. 말 즉 음성언어는 말이 끝나자마자 금세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사라져 버리는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바꿔 씀으로써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일컬어 ‘서(書)’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書’의 본래 의미는 ‘실용적인 서사행위’라는 뜻이다. 이런 실용적인 ‘書’를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한나라 말기 때부터이다.
이후, 서예는 붓이라는 유일한 필기도구의 사용에 힘입어 실용적인 서사와 예술적인 서예라는 두 갈래 길로 적절하게 상호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왔다.
그러다가 근대화 이후, 붓이 다양한 다른 필기도구로 대체되면서 서예는 일상의 서사로부터 멀어져 예술적 명맥만 이어오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급격히 보급된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인해 붓이든 만년필이든 볼펜이든 아예 손으로 ‘쓰는 행위’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로 인해 서예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읽기를 위한 서예 즉 기록을 위한 서사행위로서의 서예는 이미 도태의 위기에 처해있다.
따라서, 이제는 ‘쓰기를 위한 쓰기’로서의 서예 즉 예술행위로서의 서예를 살려 21세기에 새로운 예술 장르로 부상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실용적 서사행위의 근본적인 목적인 가독성(可讀性:능히 읽을 수 있는 속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쓰기를 위한 쓰기’ 혹은 ‘감상을 위한 쓰기’로서의 예술적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 서예작품에 주목해 보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광복 후 한국 서단을 풍미했던 강암 선생의 작품 중에서 예서, 해서, 행서 등 비교적 가독성이 확실한 작품을 고르고, 또 이러한 글씨를 쓰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노력한 강암의 서예역정 가운데 초기 면모를 보기 위해 20∼30대 작품 몇 점을 더해 '서사(書寫)'와 '서예(書藝)'사이라는 주제의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실용적 서사를 위한 서예와 예술적 표현을 위한 서예 사이의 관계를 가늠해 보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 제2전시실의 제2부분 소주제: 원시주의와 추상주의 서예
한자가 그림으로부터 비롯된 상형문자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한자의 초기 형태인 전서체(篆書體)에는 원시적인 상형성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그런 전서체 한자의 자획(字劃:한 글자를 이루는 한 단위의 선)을 생명이 숨 쉬는 서예의 필획(筆劃: 붓으로 한 번 긋는 행위의 산물)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원시 상형문자의 회화적 구조에 서예 특유의 필획이 만들어내는 질감이 더해짐으로써 전서체 서예는 다분히 육감적인 분위기를 띤다.
한마디로 섹시한 서체이다. 그러나 그 섹시함은 종욕적(從慾的)인 섹시함이 아니다. 수도승처럼 정화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섹시함이다.
뿐만 아니라, 전서체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원시미감의 순수성과 단순성을 내함하고 있다. 이러한 순수성과 단순성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독창성과 의외성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하다.
미술은 물론 문학,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에서 하나의 물결을 이루었던 프리미티비즘은 흔히 원시주의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이후, 유럽 외의 이문화(異文化)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유럽은 미술에서도 아메리카는 물론,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 존재하는 문명으로 재현되기 이전의 원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원시의 원시스러움과 순수함과 소박함과 풋풋한 섹시함을 독창성과 의외성으로 전화(轉化)하여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마침내 프리미티비즘이라는 문예조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생활에 편리한 속기(速記)를 위해 본래 상형성이 풍부한 한자의 형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상(象)을 뽑아(抽) 추상화(抽象化)한 자체(字體)가 바로 초서체(草書體)이다.

그리고 그러한 초서체 자체에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실어 살아 숨 쉬는 필획을 이용하여 휘갈기듯이 표현한 서체의 예술이 바로 초서서예이다.
그러므로 초서 서예는 정형(定形)이면서도 또한 부정형(不定形)인 서예이다. 그야말로 ‘앵포르멜(Informel)’이다. 그러므로 초서서예는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미술과 소통되는 바가 크다.
21세기의 서예는 컴퓨터로 인해 어차피 기록을 위한 서사로서의 서예는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서예 환경의 변화를 직시하고 가독성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원시미감을 풍부하게 내함하고 있는 전서체 서예와 앵포르멜 서예인 초서서예를 중심으로 서양에서 일어난 프리미티비즘과 추상표현주의를 서예에 적용한다면 서예는 21세기 최고의 세계적인 예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강암의 전서체 서예에서 찾고자 프리미티비즘과 강암의 전서 서예를 연계하고 추상표현주의와 강암의 초서 서예를 연계하는 전시공간을 마련하였다.
■ 제3전시실 소주제: 교감(交感)의 창(窓)
서예는 감동의 효과가 영화나 연극에 비해 훨씬 느리기는 하지만 서예 작품에 한번 감동을 받으면 그 감동은 무척 오래 간다.
서예 작품에서 본 명언(名言) 한 구절이 좌우명이 되어 감동이 평생 동안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동적인 서예 작품을 선물로 받는다면 작품에서 넘쳐나는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서예는 사랑을 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진한 감동으로 연결시키는 예술이다.
옛 선비들은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했다. 선물도 돈으로 해결하는 선물보다는 정신에 감동을 심는 선물을 중히 여기고 선호했다. 축하해야할 때, 혹은 위로를 해야 할 때, 상황에 걸 맞는 시 한수를 멋진 서예작품으로 써서 보내며 그 시를 택해서 쓴 이유를 진심을 담아 설명해 준다면 그 작품은 영원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서예는 기본적으로 문장을 쓰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러한 감동을 창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서예로 특별한 일을 기념하거나 송축하거나 혹은 위로할 때는 서예작품에 쓴 사람의 이름만 써서 낙관을 하는 게 아니라 “○○에게 준다”는 뜻을 담아 작품을 받는 상대방의 이름까지 써서 낙관을 한다. 이러한 경우를 두고 ‘쌍낙관(雙落款)’을 한다고 한다.
이처럼 쌍낙관을 해야 할 경우에는 짧으면서도 명쾌하고 정감이 있으면서도 우아하게 단 몇 줄의 글로 주는 사람의 마음을 다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멋진 문장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문 문장을 그렇게 간결하고 명료하며 우아하게 쓰기란 정말 쉽지 않다.
광복 이후, 한국 서단에서 능히 그런 쌍낙관의 글을 자유자재로 쓴 서예가는 강암 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점 또한 강암의 서예가 갖는 높은 성취이자 위대한 매력이다. 길이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이에, 강암 선생이 정성을 담아 쌍낙관을 한 작품만 한 자리에 모아 작품에 담긴 강암의 뜻을 살핌으로써 사랑을 듬뿍 싣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진한 감동으로 연결하는 서예의 매력을 느껴보는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다.
■ 제4전시실 소주제: 문기(文氣)를 그리다
강암의 문인화는 1927년과 1957년에 중국의 오창석과 제백석이 죽은 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경지에서 중국적 인상주의 이론인 ‘신사(神似)’와 ‘흉중성죽(胸中成竹)’, ‘상리상형(常理常形)’을 구현한 결과로 창출된 그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강암을 서양 인상주의의 대가인 세잔에 비교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금은 강암과 세잔 중 과연 누가 더 우위인지를 2014년 현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화위기의 입장에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고유의 예술인 서예를 경이와 신비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적극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암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예술의 정수인 서예가 변질되고 쇠락할 때 서예가 내함하고 있는 고유의 예술성을 가장 잘 간직하고 구현하면서 또한 지극히 동양적인 특성의 새로움을 창조하고자 노력한 동아시아 최고의 서예가이다.
서양보다 훨씬 앞서 발생한 격조 높은 동아시아적 인상주의를 끝까지 붙들고 고민하며 전통을 학습하고 연구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창조한 서예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암의 문인화는 글씨를 쓰는 서예에서 잠시 분리하여 문인화만의 가치로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어찌 세잔이나 고흐만 인상주의 화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려야 하겠는가?
이제 우리는 강암의 문인화, 1,000여 년 전에 발생한 동양적 인상주의를 이 시대에 구현한 강암의 문인화가 세잔이나 고흐의 인상주의 그림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시대를 창출해야 한다.
억지를 쓰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세계미술사에서 강암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시대가 오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출처 : 투데이안(https://www.todayan.com)

